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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위한 여행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 포르투칼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배경으로 펼쳐진 낭만적인 포르투 전경.

일상, 여행하다


이베리아반도 한쪽에는 다락방 속에 감춰진 보물 상자처럼 긴 역사의 시간을 품은 포르투(Porto)가 자리한다.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루강(Douro River)을 끼고 대항해 시대를 견인한 해양 무역의 거점이자 포르투갈 건국의 기원이 되는 도시다.

 

지금은 수도인 리스본에 가려 두 번째 도시로 밀려났지만, 포르투가 지닌 세월의 무게는 여전히 두텁고 견고하다. 도시를 들고 나는 배가 수백 척에 이르던 옛 영광의 흔적이 도시 곳곳에 고스란히 남은 포르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루강을 사이에 두고 포르투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뉜다. 한쪽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 다른 한쪽은 포트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즐비한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 자리한다. 그리고 두 지역을 거대한 철골 아치형 다리인 동 루이스 1세 다리(Ponte deDom Luis I)가 잇는다.


역사 지구는 미로처럼 좁은 골목을 따라 광장과 성당이 이어진다. 한때 탐스러운 포도를 재배하던 드넓은 포도밭은 도시로 탈바꿈했고, 그 덕분에 역사 지구 곳곳은 평지보다 언덕배기가 많다. 언덕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노란 빈티지 트램을 좇다
보면, 페인트칠이 벗겨진 소박한 가정집 벽마다 푸른 타일 장식을 맞닥뜨린다. 타일에 파란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 기법인 아줄레주다. 성당이나 궁전 같은 유명 건축물은 물론 일반 가정집에서도 다양한 문양으로 멋을 낸 아줄레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집집마다 테라스에 널어 놓은 빨랫감이 햇살에 바삭바삭 말라가는 푸근한 풍경과 미세
먼지 걱정 없는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며 자박자박 걷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일주일, 아니 딱 한 달 만 포르투를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아줄레주 장식으로 유명한 상벤투역

시간 위를 걷는 다는 것 

 

구시가의 최대 번화가이자 중심지인 리베르다드 광장(Praçada Liberdade)은 시청사를 비롯해 유명 건축물이 모여 있는 포르투 여행의 출발점이다. 광장에서 가장 먼저 향할 곳은 화려한 아줄레주 장식으로 유명한 상벤투(São Bento) 역이다.


기차역 내부로 들어서면 마치 퍼즐을 끼워 맞춘 듯 정교한 푸 른색 타일 2만여 개가 포르투갈의 역사적 순간을 품고 있다. 아치형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까지 더해지면 타일의 푸른빛이 한결 짙어진다. 상벤투 역을 나와 건물 사이로 삐죽 솟은 종탑을 향해 걷다 보면 클레리구스 교회(Igreja dos Clerigos)에 닿는다. 포르투갈의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교회보다 도시 전경을 한눈에 담을수 있는 높이 70m의 종탑이 유명하다. 250여 개에 달하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고생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탁트인 도시 풍광이 아찔하게 펼쳐진다.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좋아한다면, 포르투에서 꼭 들러야 할 성지가 있다. 렐루 서점(Livraria Lello) 
과 마제스티크 카페(Majestic Cafe)다. 영국의 소설가 조앤 롤링은 포르투에서 영어 강사로 근무하는 동안, 렐루 서점에서  소설의 영감을 얻고 마제스티크 카페에 앉아 소설을 썼다. 1869년 지은 렐루 서점은 하얀 페인트로 칠한 외관부터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 그야말로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깝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자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서점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2층으로 된 서점 내부로 들어선 순간, 예술적 영감이 필연적으로 생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확신이절로 들 만큼 오래된 나무가 주는 묵직함에 압도당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유려한 곡선 형태의 나무 계단은 서점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밀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인증 사진 하나 찍기 힘들지만, 이른 아침 입장권을 구입한다면 한결 호젓하게 서점을 둘러볼 수 있다. 렐루 서점에서10분 거리에 위치한 마제스티크 카페는 1921년 문을 연 아르누보풍의 유서 깊은 카페로,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100년이넘는 시간을 그대로 간직해온 듯 의자와 테이블, 샹들리에까지 눈길이 닿는 곳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른아침 오믈렛과 토스트를 곁들인 정갈한 아침 메뉴를 즐기거나, 여행 중간 애프터눈 티를 마시며 지친 다리를 잠시 쉬어 가기에 더없이 좋은 휴식처다.

 

마치 연인 뒤에 내걸린 한 폭의 그림처럼 화려하고 정교한 아줄레주.

 

포트와인 한 모금, 그리고 노을의 잔상

 

늦은 오후,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스레 강변으로 향한다. 역사 지구에 자리한 카이스 다 히베이라(Cais da Ribeira)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 조그마한 기념품점이 몰려 있는 항구다. 볕 잘 드는 카페에 앉은 사람들은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거나 야외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에게 간간이 박수를 보내며 해가 지기를 기다린다. 이곳 선착장에서 출발한 유람선이 유유히 강을 오가는 풍경 너머,동 루이스 1세 다리가 굳건히 서 있다. 파리 에펠탑을 건축한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가 건설한, 포르투의 상징과도 같은 이중 철교다.

 

하층부에는 자동차가 지나고 맨 위로 지하철이 오간다. 위아래 모두 보행자 도로가 나 있어 강변의 풍광을 두 눈에 담으며 다리를 건널 수 있다.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건너면 포트와인이 유래한 빌라 노바 드 가이아에 들어선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와인 창고 안에는 오크통에담긴 포트와인이 수년째 달큼한 향을 내며 익고 있다.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트와인은 투명하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영국 등지로 수출되는 동안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 독한 브랜디를첨가한 것이 포트와인의 유래다. 그래서 여느 와인과 달리 알코올 함량이 18~20%로 높다. 오래 숙성할수록 단맛이 강해지고, 포도품질이 뛰어난 해에 만든 빈티지 포트와인은 수집가 사이에서 인기다.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와인이 ‘포트(Port)’라는 명칭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할 만큼 포르투 사람들의 포트 와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 강변에는 와이너리가 즐비한데, 무료 혹은 2~3유로 남짓한 소정의 금액을 내고 와이너리를 둘러볼 수 있다. 30분 정도 와인 제조 과정을 보여주는 와이너리 투어 마지막에는 포트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도 가능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노천카페의 테이블 위엔 너나 할 것 없이 포트와인이 한 잔씩 놓여 있다. 구시가
를 주홍빛으로 물들이며 저무는 노을을 벗 삼아 달큼한 포트 와인을 기울인다. 두 뺨 위로 물드는 붉은 기운이 노을 때문인지 포트와인의 취기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을 때쯤, 청초한 음색의 파두가 한 곡조 흘러나온다. 빛과 그림자가 어지럽게 흔들리며 자아내는 수많은 잔상이 도시의 깊은 밤 속으로 미끄러지 듯 서서히 가라앉는다.